2012/05/20/주일예배 설교/남면교회

(전개식 강해 설교)    민수기 강해 10    [hwp 문서]

 

성서본문 : (민 8,1-15; 히 12,1-3 12-13; 마 8,18-22)

 

설교제목 : “ 광야의 공동체 ”

 

 

= 서 론 =

 

(1) 혹독한 광야

 

    ㉠광야 생활은 오늘 우리네 사는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일단 사유재산이 거의 의미 없다. 풀도 물도 워낙 귀해서, 남보다 악착 같이 일해서 내 양떼 늘일 수도 없다. 울타리도 없는 광야에서 도적떼가 급습하면 함께 지키고 함께 싸워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축은커녕 누구도 생존할 수 없다.

 

    ㉡서로 도우면서 함께 생존하는 ‘공동체(共同體) 생활’을 터득하지 않으면 함께 멸족하게 된다. 이 혹독한 환경에서 네 것 내 것을 구분하며 나 혼자 잘 살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런 환경에서 가축은 마을 전체의 공동 소유가 되어야 훨씬 유리하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2) 공동운명체의 생존

 

    ㉠일단 주변의 자연 환경 자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장소, ‘광야’였다.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생존환경이 덜 혹독할수록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을 가린다. 남이야 어떻든 나와 내 자식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자신은 물론 공동체 전체를 공멸(共滅)시키는 ‘공공의 적(敵)’이다.

 

    ㉡광야에서 인간은 당신을 간절히 찾게 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로 불러내신다. 혹독한 환경에서 욕심 버리고 힘을 모으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신다. 그곳에서 그들은 간절히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생존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간다.

 

 

= 본 론 =

 

(1) 레위인들의 사명

 

    ㉠본문은 다시 한 번 ‘레위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처음 이스라엘 인구 조사를 할 때는 그들을 제외하였다. 다음은 그들을 따로 세워 인구 조사를 하였고, 각 가문 별로 아주 중요한 일을 각자 나누어 맡겼다. 사람들은 일단 ‘성막(聖幕)’을 따라 살면 되었다. 레위 사람들은 바로 그 성막을 이동, 설치, 관리하고 제사장을 보조해야 했다.

 

    ㉡물론 그들도 가족이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과 자기 가족을 우선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장막을 봉사하고 지키고 관리하면서 매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을 도와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전문 생업이었다.

 

    ㉢그런데 자칫 농촌 교인들은 그걸 바로 목사가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다들 자기 생업이 바쁘다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부업이다. 구원도 부업이 될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영영 가난과 피폐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각하지 말라. 목사는 대 제사장의 명에 따라 레위 사람들을 지휘하였던 ‘지휘관’의 위치에 있다.

 

(2) 지역사회 속의 레위인들

 

    ㉠여기에 우리 주 영광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거룩한 회막(會幕)이시며 동시에 대 제사장으로 계신다. 신자들은 먼저 광야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 다시 구별된 레위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섬기고 보조한다. 목사는 주님의 종으로서 두 팔 걷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지휘한다.

 

    ㉡이렇게 신자들이 대신 속량(贖良)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은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와 다스리심 아래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공존(共存)을 도모하는 지역사회가 된다. 물론 이는 결단코 ‘기독교’가 지역 사회 전체를 ‘정복’해야 한다는 억지가 아니다.

 

    ㉢우리 지역 사회 위에 비치는 햇빛처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긍휼과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비취신다는 말씀이시다. 이 사실을 알고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며 모두 함께 살아가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3) 지역사회 속의 신자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레위 사람들이 전적으로 감당하는 ‘성막 봉사’이다. 교회의 신자들이 그와 같이 자신들의 신분에 맞게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나서 준다.

 

    ㉡자기 직분에 충실한 교회 장로님은 온 마을의 장로님이 된다. ‘교회 일에 바쁘고 얼마나 수고 많으냐’고 바쁜 철에 논도 대신 갈아 주고, 애호박도 따다 놓는다.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다. 그런 교회의 교역자(敎役者)는 나이 어린 신학생 전도사라도 ‘목사님’으로 존중 된다.

 

    ㉢그런데 이 레위인들이 자신의 진짜 직분은 잊어버리고 양 치고 밭을 가는 일에 전념한다면, 그 교회 꼴은 어떻게 되겠으며, 그 지역 사회는 얼마나 피폐 되겠는가? 바로 그런 현실 속에 우리 교회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 도대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는 한 것일까... 하고 심각하게 여쭙게 된다.

 

(4) 대제사장들의 죄악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 ‘고고학 발굴 결과’들을 살펴보자.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 구릉지는 ‘귀족계급’과 부유한 제사장들이 살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매우 부유한 가옥들이 발굴되었다. 모두가 놀랄 만큼 사치스러운 호화 저택들이다. 대표적으로 발굴된 당시 카트로스 대제사장 가문의 저택은 약 170평이나 된다.

 

    ㉡석회와 돌을 사용했을 뿐 침실이나 욕실, 식당, 거실 등 오늘날의 호화주택과 거의 다르지 않다. 도자기, 유리 제품, 등잔, 돌그릇들은 갈릴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최고급품들이다. 저택 안에는 성전의 향신료를 독점 공급하는 작업실도 있다. 함께 발견된 잉크병들과 두루마리 계약문서들은 이것이 그들의 전매업(專賣業)임을 보여 준다. 이 집은 악명 높았던 제사장 가문 중 하나였다.

 

    ㉢전해지는 노래가 있다. “베오터스 가문의... 막대기들로 화가 임한다. 하난(안나스) 가문...의 속삭임으로 화가 임한다. 카트로스 가문...의 펜으로 화가 임한다. 아쉬마엘 집...의 주먹으로 화가 임한다. 그들은 대제사장, 아들은 회계원, 사위들은 재산 관리자, 그 종들은 막대기로 백성을 때린다.”

 

 

= 결 론 =

 

(1) 광야 공동체

 

    ㉠예수님께서 친히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의 이스라엘은 이렇게 됨으로써 이미 멸망하고 있었다. ‘공동체’는 벌써 깨어져 버렸고 힘없는 농민들(암 하아레츠)은 도탄(塗炭)에 빠져 신음했다. 레위 사람들의 직무는 결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이 제 배 불리는 일에 전념한다면 어떻게 광야에서 살아남겠는가?

 

    ㉡이렇게 ‘광야 교회’는 <광야 공동체>였다. 저 광야 같은 세상에 몇 안 되는 가족이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제 살 길만 찾는다면? 이 황무지의 세상 속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교인들이 공동체의 사명은 제쳐두고 제 일만 전념한다면? 그나마 벗어놓을 수도 없는 형제들의 어깨에 피가 맺힌다. 죄 없는 목사 한 가정이 또 통째로 희생되고 만다.

 

(2) 광야에서의 생존

 

    ㉠[히 12:1-3 12-13] "이처럼 많은 증인들이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에 전념합시다.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한 것을 이렇게 참으신 분을 생각합시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어긋나지 않게 하고 고침을 받게 하시오."

 

    ㉡[마 8:21-22] "제자들 중 하나가 말하였다. “주님, 먼저 가서 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들을 장례 치르도록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님의 무익한 從僕/2012.05.19/13:42>